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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와뮤지컬Study/연기이론

[연기이론수업] 연기는 어떻게 준비하는가?

by 주액터스 연기학원 2023. 9. 25.

[연기이론수업] 연기는 어떻게 준비하는가?


1. 호흡이 맞는 연기와 예약된 연기
연습장에서 연기자들은 서로 호흡을 맞춘다. 호흡이 잘 맞는 연기자들에게 연습은 즐겁다. 

작업하는 동안 줄곧 행복해 한다. 호흡이 맞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아주 사소한 일들을 놓고 과거 동서 냉전이 무색할 만큼 대립하는 경우도 있고 마음에 빗장을 걸어 잠그고 

상대를 돌부처 대하듯 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호흡을 맞추기를 포기하고 공연의 템포에 맞추느라 반응의 순서를

(소위 ‘큐 cue’를 의미함) 인위적으로 약속하는 경우도 있다.
순간의 진실에 의거하지 않고 연기자들끼리 등장인물들의 반응을 미리 약속하는 경우를 

모두 통틀어 “예약된 연기”라고 불러본다. 
예약된 연기는 죽은 연기이다. 무대 경력이 많은 노련한 배우들은 예약된 연기를 하면서도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연기 창조의 진실은 숙련된 기술에 가려있다.
예약된 연기를 하지 않기 위하여 연습이 존재한다. 

연습은 무대 위에서 표현할 순간의 진실을 발견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어느 피아노 연주자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이 연주자는 관악기 연주자와 협연하기가 현악기 연주자보다 어렵다고 한다. 

관악기 연주자의 숨소리를 느끼기가 현악기 연주자보다 더 어렵기 때문이다. 

연주자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어야 상대가 숨을 쉴 때 그 부분을 피아노로 메울 수 있는데 

관악기 연주자의 경우 대가가 아닌 다음에는 누군가에게 맞추어 연주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고 한다.
예약된 연기의 아주 쉬운 예는 상대역할에게 자신의 반응이 제대로 나올 수 있도록 충분할 만큼의 적절한 자극을,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순간에 던져달라는 주문을 하는 경우이다.

어떤 연기자는 "몇 번째 걸음 걸이에서... 또는 모자를 집을 때..... 고개를 들어 올리기 바로 직전에…."

등등 처럼 상대방이 대사를 시작하기를 바라는 구체적 순간을 다른 연기자에게 주문하기도 한다.

또 그렇게 약속을 만드는 일이 연출가의 임무라고 믿는 분들도 있다.
이러한 예약된 연기는 상대방의 반응을 미리 짐작하게 되는 경우여서 살아있는, 

매순간 새롭게 창조되는 연기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연기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종종 "예약된 표현"을 사용하거나 목격한다.

마치 올림픽이나 월드컵 행사 때 조직위원회가 선정한 공식음료나 지정기관들을 믿듯이

어떤 환경에서는 안심하고 사용해도 되는 공인된 표현들을 일종의 세트 메뉴처럼 간직하고 있다가 사용하기도 한다.

표현의 상투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어쩌면 남들 앞에서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익숙하지 못해서 남들의 표현에서

안심하다고 보여지는 표현의 세트들을 블록 설정하여 오려두거나(Ctrl + X ) 복사(Ctrl + C) 해 두었다가

필요한 경우에 붙여쓰는(Ctrl + V) 지도 모를 일이다.
예약된 표현 역시 순간의 진실을 파괴하는 주범이다. 동원된 관객들의 강요된 표현이 대표격이다. 

텔레비전 방송의 아침 프로그램에 종종 주부를 상대로 하는 특강들이 있다. 

동원된 청중들은 무표정하게 연사의 강의를 듣는다. 

그러다가 카메라가 청중들에게 초점을 맞추면 동원된 주부 청중들은 갑자기 눈빛을 달리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 필기를 시작한다. 동원된 주부들의 이러한 태도와 표현의 접근방법이 무대에서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다. 

예약된 표현, 오려두거나 복사해 두었다가 붙여 써 먹는 표현들의 또 다른 예는

아마 "용감하신 국군 장병 아저씨께"로 시작하는 위문편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위문편지를 쓰는 시간에 어느 누구나 처음 두세 줄은 일사천리로 써 내려간다.

"……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저희들은 아저씨들 덕분에 이렇게 따뜻한 후방에서 편안히 지내고 있습니다…….."

중간에 억지로 몇 줄을 채워 넣은 다음에 글의 내용이 편지지 전체의 사분의 삼 정도만 넘어가기만 하면

줄을 바꾸어 커다란 글씨로"….. 그럼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지면 관계상 이만 줄입니다….." 로 끝나던

위문편지는 순간의 진실이 상투성에 압도당해 버린 좋은 예일 것이다.
몇 달 전 원고에서 연기자가 장면에서 등장인물의 행동을 찾을 때 행동이 자신이나 상대방의

"신체적이거나 정서적 상태를 짐작하는 것이어서는 곤란" 하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이것도 바로 예약된 연기에 대한 위험을 말한 대목이다.

예약된 연기를 피하는 길은 등장인물의 행동을 정확하게 이해할 때 가능하다.
올바른 극적 행동은 신체적 또는 정서적 상태를 미리 짐작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러한 상태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거나 유지하려고 할 때 연기자는 거기에만 신경을 쓸 뿐 

그가 수행해야 하는 행동에 주의를 기울 일 수가 없고 따라서 거짓을 연기하게 만든다.
만일 연기자의 행동이 “흥분한 친구를 진정시킨다” 라면 그 행동은 좋은 행동이 아니다. 

벌써 어떤 정서적 상태를 짐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상대역할이 흥분해 있지 않다면 그 친구를 진정시킬 수도 없다.

"흥분한 친구를 진정시킨다" 라는 행동에는 일정한 정서적 상태를 짐작하게 만든다.

이것 보다는 "친구에게 자신감을 북돋아 준다" 라는 차라리 좋은 선택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친구의 신체적이거나 정서적 상태를 미리 짐작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라도 현재 가지고 있는 자신감보다 더 나은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약된 연기의 또 다른 예는 관객이 반응하리라고 믿고 행동을 예상하는 경우이다. 

연기는 역할들 사이에 실제로 일어나는 순간의 표현일 뿐이다. 

그 표현이 앞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도 모른다. 

관객의 반응은 더더군다나 알 수 없다. 

관객의 반응을 예상하는 연기 역시 예약된 연기이고 순간의 진실을 파괴한다.

 


2. 순간의 진실
배우는 순간의 진실을 사는 사람들이다. 찰나에 온 생명을 건다. 극작가가 만들어낸 희곡 속의 상황은 상상의 상황이고 무대에서의 상황 또한 예측은 할 수 있으되 미리 살아볼 수 없는 순간들로 점철되어 있다. 어쩌면 연기자체가 덧없는 예술이다. 창조된 순간에 관객의 정서와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사라지고 만다. 오직 남는 것은 감동의 기억 뿐이다. 연기자는 다른 예술가와 달리 항상 영감을 떠올려야 한다. 연기하는 순간의 진실을 행동하고 이해하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연기를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수많은 청중 앞에서 역할의 감정에 몰입하면서도 자신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연기자는 자신이 연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머리 속에 그려 볼 수 있다. 순간의 진실이 파괴되는 것은 자신에만 집중할 때이다. 순간의 진실을 보장해 주는 유일한 방법은 상대역할에게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일이다.
연기자의 행동 수행은 혼자서 일방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상대방에게서 나오는 표현을 접수하고 그에 상응하는 반응에 맞추어야 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측하고 있을 수 있으나 정작 발생하는 반응은 처음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을 맞을 용기와 그 반응에 대응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다 알고 있고 그것을 예측하고 예측한대로, 어쩌면 기계적으로 반응한다면 긴장이 일어날 수도 없고 순간의 진실은 사라지고 만다. 익숙한 것들, 이미 반복한 것을 다시 반복하는 게 연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매 순간 순간을 맞아야 하고 그 순간의 행동을 처음 벌어지듯이 수행해야 한다.
연기자의 어려움은 연기자로서 알고 있는 상항을 등장인물을 몰라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일을 대하는 것 처럼 행동을 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기관원들이 엄하게 감시하고 있는 공공 장소에서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다른 공작원과 접선하여 비밀 문서를 전달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비밀요원의 입장과 같다. 자신이 비밀요원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여 접선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듯이 연기자는 항상 이율배반적인 상황 속에서 순간의 진실을 살아야 한다. 연기자인 나는 일고 있지만 등장인물인 역할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행동을 해야 한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다른 사람에게 눈치 채이지 않게 방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방에 들어가는 행동을 수행하기 위해서 소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무시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면 관객들은 순간의 진실을 무시한다고 알아차릴 것이다. 어떻게 문을 열고 들어갈 것인가. 그 방에 있는 다른 사람의 태도와 반응에 따라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행동이 결정될 것이다.
연기의 묘미는 항상 다른 등장인물과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소리가 나는 문을 여는 비유는 연기에서 다른 등장인물과 직접 대면하는 관계를 시사해 준다. 행동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상대역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 행동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상대역은 디딤돌과 걸림돌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흔히, “좋은 연기란 상대방의 반응을 따 먹는 것이다” 라는 표현을 자주 듣는다. 상대역할은 나의 행동을 수행하는데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다. 연기자는 무데 위에서 순간 순간에 행동이 무엇이고 그 행동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신이 해야 할 행동에 주의 집중이 쏠려 있다면 순간의 진실을 사라지고 만다. 자신의 연기에 관심의 일순위를 둔다면 그 연기자는 순간순간 자신의 연기를 평가하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연기가 관객이나 연출가, 평론가에게 어떻게 평가 받고 판단 받을지를 염두에 두게 될 것이다. 마치 무용 연습실에서 무용수들이 춤을 추면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관심을 두는 경우와 다를 바가 없다.
연기를 하는 순간에 연기자가 관심의 일순위를 두어야 되는 대상은 자신이거나 자신이 수행해야 하는 행동이 아니라 상대역에 두어야 한다. 상대역할이 자신에게 던지는 반응에 상응해야 순간의 진실이 보장된다. 상대역할에 충실해지는 방법으로 내면의 독백이 있다.

 


3. 내면의 독백
연기자들은 상대역에게 끊임없이 많을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감정이 잘 잡히게 대사를 나긋나긋하게 속삭여 달라든가, 자신이 깜짝 놀라 떨리도록 소리를 크게 질러달라든가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먼저 말했듯이 이것도 예약된 연기로 가는 코스의 하나다.
어떤 경우에 연기자들은 감정이 잘 잡히지 않는다면서 건성으로 연습을 한다. 

집에 가서 대본을 보면서 연기 설정을 정확히 하고 다음부터 연습을 잘 하겠다고 오늘의 연습은 대충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나는 연기 설정이 끝났는데 상대역할이 연기 설정이 충분히 되지 못해서 연습이 어렵다고 

불평하는 경우도 있다. 이 모두 예약된 연기로 가는 지름길에 들어선 경우다.
연극연습은 결코 혼자서 해서는 안 된다. 

독백이거나 작품 분석이거나 등장인물의 행동에 대한 머리 속의 상상과 표현의 주어진 상황에 대한 상상과 

사색은 혼자서 연습해도 되지만 상대방과 대사가 있는 장면이나 정서가 움직여지는 장면은 

절대로 혼자 연습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반응을 지레 짐작하고 연습을 하기 때문에 

순간의 진실을 창조해 낼 수가 없다. 

정확하지 않은 상대방의 반응을 미리 짐작하고 하는 연습에서는 부정확하고 섬세하지 못하며 

정해진 반응이 연습이 되고 익숙해질 것이다. 실제 공연에서 상대역이 다른 반응을 해오면 어쩔 것인가.
내면의 독백은 상대역의 표현에 정확하게 반응하는 방법일 뿐더러 연기하는 순간의 관심을 상대역할에게 

집중시킴으로써 순간의 진실을 보장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내면의 독백은 상대방의 표현을 반문하거나 상대방의 표현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마음 속으로 만들어 내는 표현이다. 

상대방으로부터 전달되는 표현의 크기에 따라 반응은 달라진다. 

그 반응을 충동적으로 순간에 만들어 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대사의 사이사이에는 상대방의 표현에 상응하는 반응을 찾기 위한 내면의 독백이 늘 자리잡고 있다고 봐야 한다.

가장 일차적인 내면의 독백은 상대방의 대사를 반문함으로서 만들어진다.

그 내면의 독백에 따라 표현에 대한 반응이 영향을 받는다.

입센의 <민중의 적> 제 2막에서 시장과 스토크만 박사가 온천의 오염문제로 대립하는 장면을 예로 들어본다.

시장 당연하겠지. 네 조그만 보고서가 자그마치 시 일년 예산의 두 배가 넘어!

 

스토크만 그렇게나 많이요?

 

시장 그렇게 이상한 표정은 짓지 말아라. 돈은 그렇다고 치자. 더 끔찍한 일이 뭔지 아니? 

수로관 바꾸는데 2년이나 걸린다는 얘기야

 

스토크만 2년이요?

 

시장 빨리 해도 그렇대. 그 동안 온천은 어떻게 되는 거냐?
틀림없이 문을 닫겠지? 온천 수질이 오염됐다고 소문이 나봐라. 누가 찾아 오겠냐? 

넌 실제로 우리 마을을 파괴할 힘을 갖고 있다 이거야.

 

스토크만 전 아무 것도 파괴하고 싶지 않습니다.

 

시장 히스틴 온천은 우리 마을의 생명줄이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미래야. 

이제 엉뚱한 짓 그만하고 생각을 돌려.

 

스트크만 세상에! 그럼 저더러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이때 두 연기자는 상대방의 대사를 상대방이 표현한대로 반문을 해 본 다음에 그에 어울리는 반응에 따라

자신의 대사를 표현한다. 다음의 내용에서 괄호에 들어간 부분이 내면의 독백 부분이다.


시장 당연하겠지. 네 조그만 보고서가 자그마치 시 일년 예산의 두 배가 넘어!


스토크만 (뭐, 시 일년 예산의 두배가 넘는다구?) 그렇게나 많이요?

 

시장 (흥, “그렇게나 많이요?” 놀라간 놀라는 군!) 그렇게 이상한 표정은 짓지 말아라.

돈은 그렇다고 치자. 더 끔찍한 일이 뭔지 아니? 수로관 바꾸는데 2년이나 걸린다는 얘기야.


스토크만 (아니 뭐라구, 그렇게 오래 걸린단 말야?) 2년이요?


시장 (또 놀라는군 “2년이요?”) 빨리 해도 그렇대. 그 동안 온천은 어떻게 되는 거냐?

틀림없이 문을 닫겠지? 온천 수질이 오염됐다고 소문이 나봐라. 누가 찾아 오겠냐?

넌 실제로 우리 마을을 파괴할 힘을 갖고 있다 이거야.


스토크만 (뭐, 내가 우리 마을을 파괴할 힘을 갖고 있다구?) 전 아무 것도 파괴하고 싶지 않습니다.


시장 (아무 것도 파괴하고 싶지 않겠다구 했겠다…) 히스틴 온천은 우리 마을의 생명줄이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미래야. 이제 엉뚱한 짓 그만하고 생각을 돌려.


스트크만 (내가 하는 짓이 엉뚱한 짓이라구? 생각을 돌리라구?) 세상에! 그럼 저더러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여기에 상대방의 목소리와 태도, 의도나 동기까지 포함된 표현으로 내면의 독백을 만든다면 

상대방의 표현에 대한 반응은 제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것이 위에서 말한

"상대방의 반응으로 연기를 한다" 는 말의 의미인 것이다.
특히 무대 위에서 대사없이 오래 서 있어야 하는 역할을 맡았을 경우에도 내면의 독백은 아주 유효하다. 

대본에 할 일이 명시되어 있지 않는 장면을 연기할 경우 연기자들은 

그 인물에 어울리는 상황을 설정하여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 

소위 리액션이라고 하는 연기를 한다는 것인데 잘못할 경우 장면의 초점을 흐리게 만들거나 

불필요한 몸짓이나 반응으로 장면의 집중을 깨뜨리게 만들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체홉의 <벚곷동산>의 첫 장면에서 로빠힌이 라네프스갸야 아주머니에 대한 회상을 하는 

긴 독백을 하는 동안 하녀 두나샤는 무엇을 하며 있어야 할까. 

<벚꽃동산>의 첫 장면을 워크숍하면서 두나샤를 맡은 연기자에게 로바힌이 독백을 하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달라고 하면 대부분 집안 일을 하려고 한다. 

방안을 정돈하거나 창문의 커튼을 정리하거나 하녀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하려한다.
이 경우에도 두나샤의 내면의 독백을 찾아보면 된다. 내면의 독백은 역할이 그 순간에 

제일 마음에 두고 있는 관심사에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두나샤는 로빠힌의 독백의 내용을 들으려고 할까? 

로빠힌이 혼자 말하는 긴 독백을 들으려는게 두나샤에게 제일의 관심사일까? 

이 장면에서 두나샤의 머리를 지배하는 생각은 무엇일까? 

등장인물의 제일의 관심사, 즉 머리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을 찾아야 한다. 

그것에서 내면의 독백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로빠힌의 긴 독백 앞 뒤의 두나샤의 대사를 살펴보면 

두나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두나샤 떠나신 줄 알았죠. (귀를 기울인다) 어머, 벌써들 오시나 봐요.


로빠힌 (귀를 기울인다) 아니…… 아니야. 짐도 찾고 이것 저것 하실일들이 있어. 

……………… (중략) …………………… 책을 읽다가 그만 잠이 들어 버렸어.


두나샤 밤새도록 개들도 자지 않아요. 그놈들도 주인이 오시는 걸 아나 봐요.

로빠힌의 긴 독백의 내용과 그 독백 앞뒤에 있는 두나샤의 대사를 보면 두나샤는 로빠힌의 독백에는 관심이 없고

주인이 돌아온다는 데 관심을 쏟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두나샤는 그런 마음의 상태를 가지고 로빠힌이 긴 독백을 하는 동안 자신 나름대로

내면의 독백을 만들어야 한다. 그 내용이 두나샤의 연기 표현을 결정할 것이다.

그 내용은 아마 주인이 돌아오면 어떻게 인사를 할 것이며, 몇 년동안 변한 자신을 알아볼 것인지의 여부,

파리로 어머니를 찾으러 간 아냐는 어떤 옷차림으로 돌아올 것인지,

주인 마님은 혹시 나에게 무슨 선물을 줄 것인지, 등등 온통 주인과 여행에 관련된 내용을 속으로 그려보고 있을 것이다.

내면의 독백이란 등장인물이 머리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을 적절한 언어로 만들어

혼자 속으로 표현하는 독백인 셈이다.


4. 생각하지 않고 반응하는 용기
순간의 진실과 내면의 독백은 연기자에게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듣고 반응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상대방이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은 사실은 자신이 미리 설정한 반응을 주지 않는

경우에 대한 불평일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어떻게 표현을 하든지 그것에 어울리는 반응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상대방은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할 수는 없게 된다.

연기자의 임무는 상대방의 표현을 측정하거나 판단하는데 있지 않다. 상대방이 내게 던진 자극에

상응하는 표현을 만들어 반응하는 데 첫 째 임무가 있는 것이다.
만일 상대방을 설득해야 하는 장면을 연기한다고 생각해 보자. 

상대방이 자신에게 전혀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고 있다면 상대방에게 불평을 할 것인가. 

상대방에게 자신에게 좀더 경청하라고 요청할 수 있는가. 

상대방이 나의 말을 듣도록 상대방의 태도를 바꿀 수 있도록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여기에 판단하지 않고, 따지지 않고 충동에 자신을 맡기고 반응을 만들어 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을 할 수 없다면 오히려 장면에 요구하는 순간의 진실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생각하지 않고 반응하는 용기는 표현에 대한 평가나 판단을 유보하고 

충동에 충실한 표현을 만들어내는 용기를 의미한다.
연출가들도 연기자의 용기를 격려할 줄 알아야 한다. 

연출자가 연습장에서 폭군으로 군림하며 검열관처럼 연기자의 반응을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평가를 받으며 연습을 하고 싶은 연기자가 어디 있을까. 어떤 경우에 연기자들은 표현을 잘못했다고 

날벼락을 맞기도 한다. <넘버 3>에나 나옴직한 재떨이가 날아들기도 하고 욕설과 함께 얼굴을 붉힌 연출가나

선배들의 고함을 들어야 한다. 연출가들의 지적이나 반응, 평가가 연기자들의 용기를 북돋우기는 커녕

검열의 기준처럼 작용해서는 곤란하다.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고 연출가나 주변 사람들의 한두 마디 평가가 연기자의 표현을 위축시키는 경우가 흔하다.

사실 연습장은 평가하고 판단하고 따지기 이전에 행동하고 표현하는,

생각없이 반응하는 온화한 분위기 속의 실험실이어야 한다. 엄격한 훈련을 내세워 숨막히는 듯한

싸늘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연출가들도 있다.

그것도 일종의 스타일이라면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연출가의 역할이 공연요소의

조직과 격려에 있다고 본다면, 연습장의 분위기는 생각없이 반응할 수 있는 연기자의 용기를

최대한 보장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고 믿는다.

 

 





출처 - 한국 연극 11월 원고

연기는 어떻게 준비하는가?
(김석만, 연출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proksm@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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