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극] "심연의 다리 중에서, 무경"- 오학영
<여자독백연기>
난 좌절의 절망을 두 번 경험했어요. 일곱 살 때 어떤 사내아이를 좋아 했었죠.
이 일에 대해선 아직까지 아무에게도 얘기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나말고도 그 아이를 좋아한 사람이 또 있었어요.
우리 집에 와 있던 열한 살 된 사촌 언니였죠.
나는 경쟁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더욱더 적극적이었어요.
마치 정복이나 할 듯이.
더구나 난 내가 사촌 언니보다 훨씬 이쁘고 매력 있다고 믿고 있었으니까요.
과신이었죠. 또 난 그 아이가 날 더 좋아하고 있다고 알았어요.
그 때 처음으로 좌절의 절망을 느꼈죠. 사촌 언니가 수상하다고 느끼고 언니를 미행했어요.
언니가 간 곳은 헛간이었어요. 나는 몰래 들여다보았죠. 아! 내 눈에 보인 그 광경.
그 아이가 언니 옷 속에 손을 집어넣고 무언가를 만지고 있었어요.
나는 마치 불붙은 노루처럼 마구 달렸어요. 정신이 없었죠.
나중에 정신을 차려 보니까 동구밖에 천년 묵은 이무기가 산다는 늪 앞에 와 있었어요.
죽을 생각이었는지도 모르죠. 단풍잎들이 스치는 물위에 얼굴을 비춰 봤어요. 어찌나 밉든지.
내가 생각하던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고 일그러진 얼굴이었어요. 난 그 어굴 위에 자갈을 마구 던졌죠.
그 때마다 물방울이 튀어오르는 소리가 났어요.
그 소리는 「난 여자가 아니다. 난 여자이고 싶지 않다.
난 남자처럼 정복자가 되겠다!」는 외침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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