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독백] "어미" 중에서, 어미 - 오태석 作
<연극영화과 입시자유연기 작품대사>
(두렁박 속에서 편지를 꺼내 읽는다) 어머님 전상서. 기러기들은 꽃이 피는 봄철을 버리고 간다 하옵니다.
(편지 속에서 처녀의 사진이 한 장 나온다) 놀래라. 우리 애한테 색시가 생겼네.
그러면 그렇지. 잘생겼구나. 정말 잘생겼다.
니가 이만큼 잘생겼으면 널 난 네 어미는 얼마나 더 예쁘겠느냐.
머리털 검고, 눈이 맑고, 눈썹 길고, 입술 붉고, 이마가 뚜렷하고 혈색이 윤택하고 귀밑이 두꺼우니 덕기가 있구나.
(편지를 읽는다) 처녀의 생년, 생월, 생시 다 적어 보내오니, 어머님께서 우리두 사람 궁합을 보시오.
갑자생에 어디 보자. (손가락 마디를 짚으며)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
이 처녀가 화성이여, 불. 우리 애가 목성이니, 나무. 나무에 불이면, 재가 되나.
아이고, 이 일을 어쩌나. 너희 두 사람이 상극이구나. 합했다가는 상한다.
이 애비하고 내 짝 나! (관객에게) 그날 밤, 꿈자리가 그렇게도 사나울 수가 없었어요.
어쩌다 보니, 내가 혼자 우물에 가 있어요. 이 함지박에 물을 퍼담으러 갔던 모양이네요.
그래 물을 퍼담느라고 이렇게 숙이는 데, (뒤꼭지에 쪽찌었던 비녀를 뽑아 보인다)
이것이 어째서 빠졌는지, 물소리를 내고 떨어져요.
보니 비녀가 함지박에 들앉았는데, 이 비녀가 잡히들 안해요.
이러고 빤히 보이는데도 손을 넣으면 없어요. (수초를 건지 듯 함지박 속에 손을 넣어 휘젓는다)
생시라면 이 함지박을 뒤집어 물을 쏟아 버렸으면 될 것을, 꿈속이라 그랬는지,
자맥질하듯, 함지박 속에 머리를 처박았더니.
아, 이 물이 열 길이나 스무 길이나 되게 한없이 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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